의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Best 10
페이지 정보
본문
의사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의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Best 10
창간 12주년을 맞아 본지는 의사 100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봤다. “지금까지의 의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입니까?”라는 것이 그것. 이번 특집에서는 전국 각지의 개원의를 포함, 중소병원 봉직의 및 대학병원 교수, 전공의와 공보의, 의료산업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CE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역의 의사들이 참여해, 의사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각양각색의 ‘짜릿한’ 순간들을 솔직 담백하게 고백했다. (일부 복수응답). 그 중 가장 많은 의사들로부터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목된 10가지와 비록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기타 답변들을 정리했다. 과연 우리나라 의사들이 의사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 결과를 공개한다. <편집자 주>
1위. 환자를 살렸을 때 (20명)
의사들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벤트’는 환자의 소생이었다. 특히 초년병 시절에, 정말 많은 우여곡절 끝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었던 순간은 의사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으로 남아 있었다.
(전공의 시절 뇌염 환아를 심폐소생술 4회 실시해 살려냈을 때, 초미숙아가 치료가 잘 돼서 후유증 없이 퇴원했을 때, 중환자가 꾸준한 치료 끝에 회복했을 때, 인턴 때 복통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진찰하고 충수돌기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응급 수술을 받게 했을 때,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뇌수막염 환자가 기적적으로 회복돼서 퇴원했을 때, 전공의시절 여덟 번 유산한 산모의 850g짜리 미숙아를 살렸을 때, 응급실에서 임상적으로는 사망한 심장마비 환자를 응급조치를 잘 해 살려냈을 때, 호흡곤란 환자를 응급조치를 잘 해 살려냈을 때, 조기식도암 환자를 발견해 수술을 통해 살렸을 때,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을 뻔한 환자가 기적적으로 소생했을 때, 천식 소아환자를 연휴기간에 혼자 힘으로 살려냈을 때 등)
2위. 환자가 죽었을 때 (17명)
두 번째로 많은 의사들이 꼽은 순간은 환자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였다. 삶과 죽음이 나뉘는 최전선에 서 있음을 실감한 순간, 내가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환자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 의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 등등.
(전공의 시절 처음으로 환자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공보의 시절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환자를 수술하다가 그 환자가 죽었을 때, 화상으로 사망한 형제를 봤을 때, 응급실에서 독극물 자살을 기도한 여중생과 알코올 중독 할아버지의 사망을 동시에 경험했을 때, 내 손을 꼭 쥐고 운명한 암환자를 봤을 때, 림프암을 앓던 소아환자를 하늘나라로 보냈을 때 등)
3위. 환자 및 보호자들이 고마움을 표시했을 때 (16명)
환자는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든 최선을 다한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자나 그 가족들의 감사의 인사였다. 작지만 소중한 환자나 보호자들의 정성이 의사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환자는 죽었지만 보호자들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할 때, 외국인무료진료 봉사 시 치료를 받은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이 사라졌다며 고마움을 표시할 때, 난치병 환자를 치료해줬는데 환자 보호자가 고맙다며 거액의 연구비를 기탁했을 때, 환자가 ‘새 인생을 살고 있다’며 제주도에서 한라봉을 보내왔을 때, 생활보호대상자 환자를 진료해 줬는데 고맙다며 쇠고기 한 근을 가져왔을 때, 치료받은 섬마을 할머니가 소라를 잡아왔을 때, 반신불수 환자 치료와 수술에 실패했으나 환자가 오히려 위로했을 때 등)
4위. 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을 때 (8명)
의사라는 직업은, 비록 힘들지만,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기회가 많다는 좋은 점이 있다. 의학자로서, 임상의사로서, 지식인이자 건전한 시민으로서, 의사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조금은 특별한 순간들을 꼽은 의사들이 8명이었다.
(내 논문이 미국 교과서에 실렸을 때,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뭔가 보탬이 된다고 느꼈을 때, 군대를 군의관으로 갈 수 있었을 때, 환경운동을 할 때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 귀를 잘 기울여줄 때,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군의관으로 환자들을 치료할 때, 시험관 아기 시술 성공했을 때, 내 환자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 가족들이 아팠을 때 내가 병원에 있는 의사라는 사실만으로 도움이 됐을 때 등)
5위. 의권쟁취투쟁 (7명)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5위에는 의권쟁취투쟁에 참여했던 때가 올랐다. 비록 유쾌하지는 않은 기억일지 몰라도, 의사로 사는 것에 대해 가장 크게 회의하고 가장 크게 좌절하고 가장 크게 분노했던 순간이기에, 파업투쟁의 순간을 꼽은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보라매공원 집회에 참석했을 때, 삭발했을 때, 파업 때 야간 당직을 서면서 고뇌하던 때, 파업 때 소아 백혈병 환자 때문에 병원에 혼자 남았을 때, 가나다 철폐 투쟁 시 의협 로비에서 밤새던 일, 의약분업 투쟁 이후 의사들이 고통받을 때 등)
6위. 처음 진료 또는 수술을 했을 때 (6명)
의사라면 누구나 ‘첫 환자’, ‘첫 집도’ 등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기도 할 ‘첫경험’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의사들이 6명이었다.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첫 환자를 봤을 때, 첫 수술 집도했을 때, 처음 수술하던 날 잘 못한다고 선배에게 꾸지람 듣고 선배가 수술 대신했을 때, 처음 CPR 하던 날, 전공의 시절 처음으로 손가락 접합수술 집도했을 때 등)
공동 7위. 첫 발령을 받았을 때 (4명)
개원의들이 개원 첫날을 잊지 못하듯, 대학교수 및 봉직의들은 처음 발령을 받을 때나 처음 취직하여 출근했을 때를 잊지 못했다.
(대학병원에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첫 발령 후 간호사들과 대면할 때, 충남 홍성의 병원에 취직해 첫 출근하던 날 등)
공동 7위. 개원했을 때 (4명)
개원의라면, 처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병원을 열던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 건물 구입해 개원했을 때, 내 이름으로 개원했을 때, 개원한 첫날 첫 번째 환자가 들어왔을 때 등)
공동 7위. 의사로서 회의감이 들었을 때 (4명)
의사로서, 특히 우리나라처럼 기형적인 의료제도와 의료문화를 가진 나라의 의사로서, 어찌 회의에 빠졌던 순간이 없을까. 4명의 의사들은 그런 순간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의료정책이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때, 공보의 시절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진료환경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인턴시절 위암에 걸린 환자가 치료비가 없어 퇴원한 후 자살해서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등)
공동 10위. 실수했을 때 (3명)
실수했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답한 의사들도 3명이 있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통해 더 큰 교훈을 얻는다면 작은 실수는 충분히 용서될 수 있으리라.
(큰 실수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됐을 때, 제왕절개수술이 잘못돼 법정 소송까지 갔을 때, 의대 시절, 실습하면서 돌보던 정신과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됐을 때 등.
공동 10위. 의사나 전문의가 됐을 때 (3명)
의사면허 혹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순간을 꼽은 의사도 3명이 있었다. 떨어질지 몰라서 애태웠던 사람들일수록 이 순간이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을 때, 의사면허를 받는 순간 등)
순위권 밖의 재미 있는 답변들
- 모발이식술 받은 환자가 1년만에 찾아왔는데 못 알아봤을 때
- 환자 보호자와 멱살잡이 했을 때
- 출산장면을 처음 봤을 때
- 처음으로 아이 받았을 때
- 크리스마스 이브에 간암 환자를 이송하는데 응급차 안에서 아내와 딸이 정성껏 간호하는 모습을 봤을 때
- 간경화 말기 환자를 가족들이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모습을 봤을 때
- 처음으로 소생 불능한 환자를 이송했을 때
- 미국에 있을 당시,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은 한국인 입양아가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골수까지 이식받았으니 건강하게 커서 양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 어렵게 찾은 골수기증자가 예비 시어머니의 골수기증 반대로 고생해야 했을 때
- 내가 응급실장으로 있었던 병원에서 아내가 딸아이를 출산했던 때
- 아들이 약시인 것이 발견됐을 때.
- 공보의 시절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자기 집을 본인이 움직이는 데 편리하도록 만들어 놓고 생활하고 있던 모습을 봤을 때
- 회복불능이라고 진단에 실망해 퇴원했던 환자가 정신적으로 재활에서 성공해서 또 다른 삶을 만족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 인턴 시절 만났던 미모의 여학생을 6개월 후 우연히 내과 병동에서 다시 만났는데 암에 걸려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을 때
- 요즘처럼 환자가 없을 때
- 인턴생활 도중에 그만두었을 때와 두 번째 인턴시절에는 1등 했을 때
- 암에 걸린 어머니를 동료의사들이 수술도 해주고 방사선 치료도 잘 해주었을 때
- 너무 힘들었던 전공의 시절
- 의대교수가 되서 제자들로부터 첫 번째 사은회를 받았을 때
- 응급실에 근무할 때 한 남자가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 봤더니 이미 구급차 안에서 산모가 출산을 끝내버렸을 때
- 2003년도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진료 갔을 때
- 인턴시절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받은 예비군이 부인과 함께 병원에 왔다. 이유인즉슨 부인이 임신을 한것이다. 일단 남편을 검사해 수술이 잘못됐다고 남편을 안심시킨 후 다시 수술을 해줬다. 이후 부인이 다시 찾아와 ‘가정의 평화를 지켜 줘 고맙다’며 인사했을 때
- 전공의 시절 조울증 환자에게 맞아서 당직서는 내내 얼음주머니로 얼굴을 마사지했을 때
- 전공의시절, 해외학회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전날 과음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별 탈없이 발표를 무사히 끝냈을 때. ■ |+
의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Best 10
창간 12주년을 맞아 본지는 의사 100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봤다. “지금까지의 의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입니까?”라는 것이 그것. 이번 특집에서는 전국 각지의 개원의를 포함, 중소병원 봉직의 및 대학병원 교수, 전공의와 공보의, 의료산업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CE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역의 의사들이 참여해, 의사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각양각색의 ‘짜릿한’ 순간들을 솔직 담백하게 고백했다. (일부 복수응답). 그 중 가장 많은 의사들로부터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목된 10가지와 비록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기타 답변들을 정리했다. 과연 우리나라 의사들이 의사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 결과를 공개한다. <편집자 주>
1위. 환자를 살렸을 때 (20명)
의사들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벤트’는 환자의 소생이었다. 특히 초년병 시절에, 정말 많은 우여곡절 끝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었던 순간은 의사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으로 남아 있었다.
(전공의 시절 뇌염 환아를 심폐소생술 4회 실시해 살려냈을 때, 초미숙아가 치료가 잘 돼서 후유증 없이 퇴원했을 때, 중환자가 꾸준한 치료 끝에 회복했을 때, 인턴 때 복통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진찰하고 충수돌기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응급 수술을 받게 했을 때,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뇌수막염 환자가 기적적으로 회복돼서 퇴원했을 때, 전공의시절 여덟 번 유산한 산모의 850g짜리 미숙아를 살렸을 때, 응급실에서 임상적으로는 사망한 심장마비 환자를 응급조치를 잘 해 살려냈을 때, 호흡곤란 환자를 응급조치를 잘 해 살려냈을 때, 조기식도암 환자를 발견해 수술을 통해 살렸을 때,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을 뻔한 환자가 기적적으로 소생했을 때, 천식 소아환자를 연휴기간에 혼자 힘으로 살려냈을 때 등)
2위. 환자가 죽었을 때 (17명)
두 번째로 많은 의사들이 꼽은 순간은 환자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였다. 삶과 죽음이 나뉘는 최전선에 서 있음을 실감한 순간, 내가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환자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 의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 등등.
(전공의 시절 처음으로 환자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공보의 시절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환자를 수술하다가 그 환자가 죽었을 때, 화상으로 사망한 형제를 봤을 때, 응급실에서 독극물 자살을 기도한 여중생과 알코올 중독 할아버지의 사망을 동시에 경험했을 때, 내 손을 꼭 쥐고 운명한 암환자를 봤을 때, 림프암을 앓던 소아환자를 하늘나라로 보냈을 때 등)
3위. 환자 및 보호자들이 고마움을 표시했을 때 (16명)
환자는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든 최선을 다한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자나 그 가족들의 감사의 인사였다. 작지만 소중한 환자나 보호자들의 정성이 의사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환자는 죽었지만 보호자들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할 때, 외국인무료진료 봉사 시 치료를 받은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이 사라졌다며 고마움을 표시할 때, 난치병 환자를 치료해줬는데 환자 보호자가 고맙다며 거액의 연구비를 기탁했을 때, 환자가 ‘새 인생을 살고 있다’며 제주도에서 한라봉을 보내왔을 때, 생활보호대상자 환자를 진료해 줬는데 고맙다며 쇠고기 한 근을 가져왔을 때, 치료받은 섬마을 할머니가 소라를 잡아왔을 때, 반신불수 환자 치료와 수술에 실패했으나 환자가 오히려 위로했을 때 등)
4위. 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을 때 (8명)
의사라는 직업은, 비록 힘들지만,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기회가 많다는 좋은 점이 있다. 의학자로서, 임상의사로서, 지식인이자 건전한 시민으로서, 의사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조금은 특별한 순간들을 꼽은 의사들이 8명이었다.
(내 논문이 미국 교과서에 실렸을 때,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뭔가 보탬이 된다고 느꼈을 때, 군대를 군의관으로 갈 수 있었을 때, 환경운동을 할 때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 귀를 잘 기울여줄 때,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군의관으로 환자들을 치료할 때, 시험관 아기 시술 성공했을 때, 내 환자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 가족들이 아팠을 때 내가 병원에 있는 의사라는 사실만으로 도움이 됐을 때 등)
5위. 의권쟁취투쟁 (7명)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5위에는 의권쟁취투쟁에 참여했던 때가 올랐다. 비록 유쾌하지는 않은 기억일지 몰라도, 의사로 사는 것에 대해 가장 크게 회의하고 가장 크게 좌절하고 가장 크게 분노했던 순간이기에, 파업투쟁의 순간을 꼽은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보라매공원 집회에 참석했을 때, 삭발했을 때, 파업 때 야간 당직을 서면서 고뇌하던 때, 파업 때 소아 백혈병 환자 때문에 병원에 혼자 남았을 때, 가나다 철폐 투쟁 시 의협 로비에서 밤새던 일, 의약분업 투쟁 이후 의사들이 고통받을 때 등)
6위. 처음 진료 또는 수술을 했을 때 (6명)
의사라면 누구나 ‘첫 환자’, ‘첫 집도’ 등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기도 할 ‘첫경험’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의사들이 6명이었다.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첫 환자를 봤을 때, 첫 수술 집도했을 때, 처음 수술하던 날 잘 못한다고 선배에게 꾸지람 듣고 선배가 수술 대신했을 때, 처음 CPR 하던 날, 전공의 시절 처음으로 손가락 접합수술 집도했을 때 등)
공동 7위. 첫 발령을 받았을 때 (4명)
개원의들이 개원 첫날을 잊지 못하듯, 대학교수 및 봉직의들은 처음 발령을 받을 때나 처음 취직하여 출근했을 때를 잊지 못했다.
(대학병원에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첫 발령 후 간호사들과 대면할 때, 충남 홍성의 병원에 취직해 첫 출근하던 날 등)
공동 7위. 개원했을 때 (4명)
개원의라면, 처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병원을 열던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 건물 구입해 개원했을 때, 내 이름으로 개원했을 때, 개원한 첫날 첫 번째 환자가 들어왔을 때 등)
공동 7위. 의사로서 회의감이 들었을 때 (4명)
의사로서, 특히 우리나라처럼 기형적인 의료제도와 의료문화를 가진 나라의 의사로서, 어찌 회의에 빠졌던 순간이 없을까. 4명의 의사들은 그런 순간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의료정책이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때, 공보의 시절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진료환경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인턴시절 위암에 걸린 환자가 치료비가 없어 퇴원한 후 자살해서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등)
공동 10위. 실수했을 때 (3명)
실수했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답한 의사들도 3명이 있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통해 더 큰 교훈을 얻는다면 작은 실수는 충분히 용서될 수 있으리라.
(큰 실수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됐을 때, 제왕절개수술이 잘못돼 법정 소송까지 갔을 때, 의대 시절, 실습하면서 돌보던 정신과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됐을 때 등.
공동 10위. 의사나 전문의가 됐을 때 (3명)
의사면허 혹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순간을 꼽은 의사도 3명이 있었다. 떨어질지 몰라서 애태웠던 사람들일수록 이 순간이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을 때, 의사면허를 받는 순간 등)
순위권 밖의 재미 있는 답변들
- 모발이식술 받은 환자가 1년만에 찾아왔는데 못 알아봤을 때
- 환자 보호자와 멱살잡이 했을 때
- 출산장면을 처음 봤을 때
- 처음으로 아이 받았을 때
- 크리스마스 이브에 간암 환자를 이송하는데 응급차 안에서 아내와 딸이 정성껏 간호하는 모습을 봤을 때
- 간경화 말기 환자를 가족들이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모습을 봤을 때
- 처음으로 소생 불능한 환자를 이송했을 때
- 미국에 있을 당시,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은 한국인 입양아가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골수까지 이식받았으니 건강하게 커서 양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 어렵게 찾은 골수기증자가 예비 시어머니의 골수기증 반대로 고생해야 했을 때
- 내가 응급실장으로 있었던 병원에서 아내가 딸아이를 출산했던 때
- 아들이 약시인 것이 발견됐을 때.
- 공보의 시절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자기 집을 본인이 움직이는 데 편리하도록 만들어 놓고 생활하고 있던 모습을 봤을 때
- 회복불능이라고 진단에 실망해 퇴원했던 환자가 정신적으로 재활에서 성공해서 또 다른 삶을 만족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 인턴 시절 만났던 미모의 여학생을 6개월 후 우연히 내과 병동에서 다시 만났는데 암에 걸려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을 때
- 요즘처럼 환자가 없을 때
- 인턴생활 도중에 그만두었을 때와 두 번째 인턴시절에는 1등 했을 때
- 암에 걸린 어머니를 동료의사들이 수술도 해주고 방사선 치료도 잘 해주었을 때
- 너무 힘들었던 전공의 시절
- 의대교수가 되서 제자들로부터 첫 번째 사은회를 받았을 때
- 응급실에 근무할 때 한 남자가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 봤더니 이미 구급차 안에서 산모가 출산을 끝내버렸을 때
- 2003년도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진료 갔을 때
- 인턴시절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받은 예비군이 부인과 함께 병원에 왔다. 이유인즉슨 부인이 임신을 한것이다. 일단 남편을 검사해 수술이 잘못됐다고 남편을 안심시킨 후 다시 수술을 해줬다. 이후 부인이 다시 찾아와 ‘가정의 평화를 지켜 줘 고맙다’며 인사했을 때
- 전공의 시절 조울증 환자에게 맞아서 당직서는 내내 얼음주머니로 얼굴을 마사지했을 때
- 전공의시절, 해외학회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전날 과음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별 탈없이 발표를 무사히 끝냈을 때.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