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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중소병원, 해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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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충훈
댓글 0건 조회 823회 작성일 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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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중소병원, 해법이 없다

시민단체, ‘공공병원화’ 주장
공공병원은 민영화 시도 불발

중소병원들이 연이어 쓰러지고 있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부도난 민간병원을 공공병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영난에 처한 공공병원을 민간에 위탁하려 시도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병원 살리기, 새로운 유행?

중소병원들의 부도 및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와 달리 부도난 ‘병원 살리기’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지역주민 또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부도난 방지거병원의 경우 최근 ‘방지거병원 공공병원화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발족, 병원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민대책위는 방지거병원의 공공병원화를 위한 사업으로 ‘대책위 조직확대와 4만명 시민위원 참여운동’, ‘시민공청회’ 개최, ‘공공병원 설치와 운영에 대한 서명운동’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대책위는 방지거병원의 폐업은 지역사회전체의 문제로서 인근상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조속한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지만 시민운동단체나 정치인들은 지역과 무관하게 인식해 큰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 동안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해 방지거병원 문제를 지역의 주요한 공익 문제로 접근하기로 했으며 공공의료기관으로 정상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해 9월 폐업한 목포가톨릭병원도 폐업 후속대책으로 공공의료 확보차원에서 가톨릭병원을 시립의료원으로 확장·이전하는 방안에 대해 목포가톨릭병원 정상화대책위원회와 목포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편 지난 6월 폐업이 결정된 성남 인하병원의 경우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발족하여 시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병원 살리기에 힘쓰고 있다.

공공병원은 오히려 민영화 추진

그러나 이와 반대로 기존 공공병원의 민간병원화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유는 역시 경영난 때문.

최근 서울시는 시립동부병원의 병상가동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병원이 위탁운영 함으로써 병상가동률을 높이고, 그로 인해 경영도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숙자, 행려병자, 의료보호 환자들에 대한 비율이 높아 매년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고, 더 이상의 예산 확대가 어렵다고 판단한 서울시가 시립동부병원으로 인한 재정적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서울시 보건과의 한 관계자는 “시립동부병원의 위탁은 공공의료기능 역할 수행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며, 따라서 민간위탁을 한다고 해서 공공성이 후퇴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14일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비롯한 6개 시민단체들은 서울시립동부병원 민간위탁 반대를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날 시민단체들은 결의문을 통해 “시립동부병원이 민간병원에 위탁된다면 수익이 안 되는 질병예방, 검진사업, 방문진료 등은 하지 않을 것이며, 수익성이 적은 의료급여 환자 진료를 축소하고 수익성을 위해 불필요한 진료를 확대해 건당 진료비가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강한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특히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시민의 세금 320억원으로 만들어진 시립동부병원은 노숙자 및 행려병자는 물론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공공병원으로 저렴한 진료비로 인해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서울시가 적자를 메우기 싫어서 민간 위탁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는 초기 참여정부가 공공의료를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주장과도 전면 배치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같은 시립동부병원 민간 위탁 방침은 최근까지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초 한양대병원의 1차 위탁거부에 이어 2차 민간위탁 신청마감 기간이었던 7월 31일까지 위탁신청기관이 없었으며, 이에 신청기간을 지난달 14일로 연장해 가톨릭중앙의료원, 고려대학병원과 민간위탁 추진 세부사항을 논의했으나, 끝내 민간위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민간위탁 추진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대의 목소리가 병원들로 하여금 부담을 줬고, 환자 수와 병상가동률을 높여야 한다는 경영 개선에 대한 부담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현 의료제도 하에서 대학병원들조차 병원 위탁경영에 대한 부담감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병원부도, ‘왜’에 대한 고민이 없다

공공병원의 기능이 강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재정지원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금의 목소리들이 원칙적으로 ‘국민의 건강권 확보 및 사회 소외계층의 의료제공’ 측면에서 분명 의심의 여지없이 옳은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정작 병원이 ‘부도’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이유에는 무관심한 듯하여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오히려 부도의 근본적인 원인을 병원에게 돌리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인하병원폐업 범시민대책위원회는 발족식에서 병원은 법적으로 돈벌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공익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정부로부터 줄곧 세제혜택을 받아왔다며, 이런 혜택을 받는 동시에 병원은 지역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데 기여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안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대책위는 87년부터 인하병원을 운영해 온 모(母)그룹이 재정투자조차 하지 않은 인하병원이 적자를 낸다는 이유로 폐업을 결정한 것은 시민의 건강을 도외시하는 처사라며, 폐업이 아닌 시설투자를 통해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병원 및 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에 대한 의무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병원이 문을 닫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농후하다. 사회 공공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특정 민간주체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남 인하병원이 폐업에 이르게 된 이유는 여타 부도난 병원들과 크게 차이점이 없다. 지난 88년 개원한 성남 인하병원은 95년도까지만 해도 경영상태가 괜찮았으나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기점으로 매년 입원 및 외래환자가 25∼30% 격감했고, 인근에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 분당 차병원 등 대형병원들이 들어서면서 수익이 대폭 감소, 결국 올해 2월 552억원에 달하는 병원 누적적자로 인해 폐업을 결정했다.

성남 인하병원의 한 관계자는 “97년 이후 조직 개편과 수 차례의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병상 및 진료 과목을 축소 또는 폐쇄하였고 수익성이 낮은 의사들을 사직시키는 등 경영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그러나 구조조정이 일부에 그쳐 인건비 감축에 실패했고, 경기 악화로 인한 추가 지원이 불가능해 결국 완전 폐업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한진그룹은 지난해와 올해 약 1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했으나 적자폭을 줄이지 못해 결국 병원 운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 인하병원이 병원을 살리기 위해 시도한 노력들은 현재 중소병원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성남 인하병원은 경영 개선을 위해 2000년 비수익 진료 과목을 대상으로 5개 과를 폐쇄하고, 병동 84개 및 3개 과를 축소했으며, 안과 및 이비인후과는 개방병원제를 도입했다. 또한 97년 737명에 이르던 직원을 구조조정, 명예퇴직 등을 통해 2003년 447명으로 축소하는 한편, 98년과 2000년에는 무급 휴직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

최근 ‘부도난 병원 살리기’의 대안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공공병원화’에 대한 보건의료전문가, 정부 및 중소병원 관계자의 의견은 다양하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조우현 교수는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설명되는데, 하나는 민간병원이 하지 않는 기능들을 공공에서 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면이고, 또 하나는 병원 자체의 소유 및 운영 주체에 대한 부분과 관련해 병원의 소유 및 운영의 주체를 공공이 가지면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현재 공공병원들이 하고 있는 기능들이 거의 민간병원과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의료보호환자 비율이 조금 더 높거나 등등 다른 게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공공병원들이 모델로 할 수 있는 병원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의 민간병원이 부도가 나서, 그 지역에 거점병원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공공이 인수해서 운영을 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군 단위에 작은 병원이 없어졌다면, 이걸 정부가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병상의 일정부분을 정부가 소유해서 운영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고, 망하는 병원을 정부가 다 인수해서 공공병원화 하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본다. 지역에 특성에 따라 병원이 꼭 있어야 하는데 민간이 그 기능을 못할 경우에만 정부가 나설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중소병원의 부도 원인에 대해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 지역의 중소 할인점이 붕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원의 공급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부재하고, 전적으로 민간의 판단에 맡기기 때문”이며, “여기에 중소병원의 주먹구구식 운영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병원의 소유와 운영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큰 국내 의료환경에서 초기 참여정부는 공공의료기관의 확충을 공약으로 제시, 그 방안으로 공공병원의 신설뿐만 아니라 기존 민간병원의 인수도 언급한 바가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지만, 문제는 현 정부에서 이를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급성기 병상 공급이 과잉인 상태에서 모든 중소병원을 살릴 것을 정부에 주문할 수는 없다”며 “정부는 중소병원을 전문병원화 하거나 장기 요양 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으나, 이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선언적인 정책에 불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의 개발이나 재원 확보, 담당 기구 설립에 태만한 것이 정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소병원협의회 김철수 회장은 “일각에서 일부 민간병원이나 시립동부병원 등의 시립병원들을 공공병원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공공병원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순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안이지 일부 시민단체나 연합회 등이 공공병원화를 해 달라고 해서 들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무너져 가는 중소병원의 공공병원화는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에 따라 접근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공공병원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으나 이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현재의 상황에서 무슨 돈으로 쓰러져 가는 병원들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최근 전국중소병원장 회의에서도 이 같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현재 입원환자를 받고 있는 의원들이 입원환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등 의원과 병원의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으로 제기됐으며, 또 하나 개방병원제도를 확대해 병상이 필요한 의원들의 경우 개방병원을 이용해 병상을 이용하게 된다면 의료이용은 물론 자원활용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약분업, 의료시장 개방 등 현재 병원이 처한 의료현실을 감안해 볼 때, 중소병원의 연쇄적인 부도는 향후에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폐업하는 모든 중소병원들을 지금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공공병원화 시키는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더욱이 공공병원에 대한 평가가 시립동부병원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의료기능을 얼마나 수행했느냐가 아니라 경영이 적자인가, 흑자인가를 따지는 현 의료정책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과적으로 부도난 모든 중소병원을 공공병원화하는 일은, 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결코 중소병원을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은 아닌 것이다.

결국 중소병원의 연쇄부도나 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묘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중소병원의 경영난을 해소하는 것과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민간과 공공 구별 없이 몰락하고 있는 중소규모 의료기관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희석 기자
leehan21@fromdoc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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