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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수인의 딜레마, 의사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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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충훈
댓글 0건 조회 710회 작성일 0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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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수인의 딜레마, 의사의 딜레마

최근 개원가의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야간 및 주말 진료시간을 늘리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 동네의원들이 문을 닫는 시각은 평일 7시, 토요일 1시 정도였다. 물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아예 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저녁 8시까지 문을 여는 곳은 매우 흔하고, 9시나 10시까지 문을 여는 곳도 적지 않다. 토요일에는 오후 5∼6시까지, 휴일에도 1∼2시까지 진료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남의 속도 모르고 ‘돈독이 올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사들의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의료 시스템의 모순을 반증하는 단서일 것이다.

얼마 전 대한개원의협의회에서는 재미있는 한 가지 주장을 했다. 의사의 적정 월수익은 725.5만원 정도인데, 현재는 적정 수준의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치의 산출 근거는 이렇다. 우선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앙고용정보원이 지난 6월에 발표한 산업직업별 고용구조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6.2시간이고 의사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8.8시간이다. 통계청 자료에 나와 있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월소득은 203.6만원이다. 또한 OECD 국가들의 ‘근로자 평균 : 의사’의 소득 비율은 1 : 2.8이다. 따라서, 일반 근로자의 평균 임금에 (58.8/46.2)을 곱하고 거기에 다시 2.8을 곱하면 약 725.5만원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같은 자료에 의하면 의사들의 월평균 임금은 398.1만원에 불과하니, 적정 수준의 50%를 갓 넘을 뿐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원래 통계라는 것이 흔히 ‘마술’로 불리니, 이 수치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사들, 특히 개원의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이 수치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한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의사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57.3시간으로 나타났고, 설문 응답자의 70% 가까이가 법정공휴일에도 진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의사들을 휴일에도 쉬지 못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잘못된 의료정책을 오랫동안 펴고 있는 정부로 인한 난관의 돌파구를 자신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데서 찾고자 하는 의사들의 처지는 참 딱한 것이다. ‘남들도 다 늦게까지 문을 여니까’, ‘먹고살기 힘드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개원의들을 보면서 문득 ‘수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이론 용어가 떠오른다.

수인의 딜레마란 이런 것이다. 공범 A와 B가 경찰에 붙잡혀 각각 격리된 상황에서 심문을 받는데, 두 사람 모두 고백하면 각각 10년형을 받게 되고, A는 고백하고 B는 함구하는 경우 A는 특전을 받아 무죄로 풀려나고 B는 30년형을 받게 되며, 반대로 B가 고백하고 A가 함구하면 B는 무죄, A는 30년형을 받는다. A와 B가 모두 끝까지 함구하면 3일씩 구류를 살고 무죄로 풀려날 수 있지만, 서로 상대방이 고백할지 함구할지 알 수가 없다.

A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B가 고백을 한다고 가정하면, A는 자기도 고백하면 10년이고 고백하지 않으면 30년형을 받게 되니, 고백하는 게 낫다. 또 B가 함구를 한다고 가정하면, A는 자기가 고백하면 당장 무죄로 풀려나지만 함구하면 3일을 고생해야 하므로, 역시 고백하는 것이 낫다. 즉, B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A는 고백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물론 B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두 사람 모두가 고백을 하여 각기 10년형을 받게 된다.

물론 A와 B 모두가 같이 함구하여 3일씩 구류를 받고 무죄로 나오는 것이 가장 좋지만, 상대방이 고백을 하면 자신이 30년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용어는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데, 주로 각 개인이 자기의 이득만을 생각하여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의사들이 약가마진에 취해서 저수가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동안 한국의료가 서서히 망가져 온 것처럼, 모든 의사들이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해 현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면 근본적인 개혁은 요원할 것이다. 하지만 다들 60시간을 일하는데 혼자서 주 5일, 40시간 근무를 고집할 무모한 사람은 없을 터이니, 이야말로 ‘의사의 딜레마’가 아닌가.

최소한의 당직 의사 말고는 모든 의사들이 주말에는 편안히 쉴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원한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이게 이 나라에서는 안 이루어지고 있다.

박재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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