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병원내 폭력, 이제는 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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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스토리] 병원내 폭력, 이제는 사라져야
<주간 - 158> 2003-02-24
아랫년차 폭행한 전공의 구속 사건 발생
‘교육’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의료계의 수치
최근 인기 개그우먼 이경실씨가 남편인 손 모씨에게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폭력이 사회적 쟁점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경실씨가 이번 폭행으로 우측 늑골 6·7번과 골반이 골절되고, 남편 손씨가 이로 인해 긴급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일각에서는 가정폭력을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하지만 습관적인 아내 구타, 자녀의 부모학대, 아동학대 등 가정에서의 폭력문제가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폭력이 바로 의료계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그 어떠한 직종보다도 폭력에 대해 관대하지 않아야 할 병원에서,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철저함이 요구된다는 미명하에 ‘교육’의 이름으로 스승과 제자, 선·후배 의사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산 모 대학병원의 경우 3년차 레지던트가 1년차 레지던트를 둔기로 때려 피해자가 두개골골절 및 경막하혈종 등의 중상을 입고 응급수술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도 피해자인 1년차 레지던트의 경우 수술경과가 좋아 현재 병원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해자인 3년차 레지던트는 4개월 정직의 징계를 받고 병원을 떠나 있는 상태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3년차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1년차가 계속된 콜에도 연락이 없자, 새벽에 일을 마친 후 3년차가 1년차를 불러 야단을 치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옆에 있던 둔기로 1년차를 때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형사사건으로 3년차 레지던트가 구속되는 등 법적 절차가 진행되어 벌금형에 처해졌으며, 3년차 레지던트는 병협 차원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오는 2월말까지 수련기간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또한 해당병원으로부터는 지난해 11월 8일부터 2월 20일까지 정직처리 됐다.
이어지는 폭행 사건
또 지난해에는 경기도의 모 대학병원의 경우 정형외과의 김 모 교수가 지금까지 수년간 레지던트들에게 폭언과 폭력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해 오던 것이 문제가 돼 논란이 된 사건도 있었다.
수년간 각목이나 해머로 제자들의 두부 및 신체를 가격해 왔던 김 교수의 지속적 폭력은 이를 끝내 참지 못한 레지던트들이 병원을 집단 이탈하면서 밖으로 알려지게 됐는데, 결국 대한병원협회 등이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 책정시 전속전문의 수에서 김 교수를 제외토록 조치하자 김 교수가 병원을 끝내 사임하면서 일단락 됐다.
하지만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해당 대학병원 교수협의회가 최근 ‘대학다운 대학을 간절히 바라며’라는 성명서를 통해 ‘정형외과 폭행사건을 바라보는 일부 보직자들의 비뚤어진 시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교수협은 “이같은 폭력사태에 대해 ‘사랑의 매다’, ‘교육적 처벌이다’, ‘가르치려는 열정이 지나치다 보니 때리게 되었다’, ‘우리도 다 맞고 자랐다’는 등 지위를 이용한 강자의 일방적 폭력을 합리화하고 있다”며 “폭력은 그것이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국가에 의한 고문이든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될 수도, 두둔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교수협은 또 “레지던트들의 집단행동을 마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공모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일부 보직자들의 냉소적 시각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만성적 폭력 앞에 노출되면 정신적으로 무력해지고 자기방어가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만성적인 폭력 앞에서 레지던트들이 자기보호를 위해 어떠한 방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반문했다.
특히 “병원 차원에서 구타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이 있는지, 구타의 피해자가 되어 전문의가 되려는 꿈을 접고 병원을 떠나야 했던 제자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했느냐”며 “철저하게 무대책으로 일관”한 병원 측을 비난했다.
이에 따라 교수협은 이번 폭력사건을 계기로 병원 내 감춰져 있는 폭력의 실상을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 다시는 구타 등 폭력행위가 의료원 내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쉬쉬’하며 덮는 경우가 대부분
이처럼 병원 내에서 폭력이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지만 의료계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의료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무지나 불성실은 곧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가혹할 정도로 ‘철저함’이 요구되다보니, 이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폭력적 방법이 선택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른 형태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어차피 매일 얼굴을 보며 일해야 하는 점, 의사들끼리의 불협화음이 환자를 돌보는 데 있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는 폭력이 진료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모 대학병원의 일반외과 4년차 레지던트는 “1년차 때 일 처리를 빨리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로 맞거나 발에 채인 적이 있다”며 “일과 관련된 부분이라 맞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아랫년차가 워낙 우리 때와는 달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이런 병원 내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 내과 3년차 레지던트는 “우리 병원의 경우 전공의협의회가 없어 아직 폭력사태가 크게 불거진 적은 없다”는 말로 폭행 자체가 없지는 않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잘못된 관행, 이제는 고쳐야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든 폭력에 대해서는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폭력에 대해 가장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직업이 의사인데 ‘때리지 않으면 환자가 죽는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은 의료계가 다른 직종에 비해 오히려 낙후돼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아주의대 정신과 임기영 교수는 “사회적으로 폭력이 줄고 있는 것을 교육의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난 98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 시행된 이후 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줄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사회적으로 이제는 ‘때리면 패가 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교수는 “환자의 생명을 구실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로 얽혀있는 병원 내 보직자들의 위치 때문에 과거 의료계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다면 이제는 의료계도 사회의 변화에 맞춰 과거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들어 의과대학의 경우 인문, 사회 분야의 인성교육을 위해 교과과정을 바꾸고 있지만 의대에서 배웠다고 하더라도 의대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라며 “의사들의 지속된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의과대학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들에게도 윤리 등에 대한 교육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비록 실수에서 비롯된 폭력이라 하더라도 교수들이 감싸지 않고 이를 강력하게 제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구 모 대학병원 3년차 레지던트는 “3년전 인턴 수련시 노티파이에 30분 정도 늦었다는 이유로 1년 위 선배에게 인턴 동기가 환자 앞에서 뺨을 맞은 적이 있다”며 “그러나 이 사건으로 윗년차 레지던트가 징계를 당한 이후 폭력사건이 문제가 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레지던트는 “병원 내 폭력이 아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아직도 현실”이라며 “의국 별로 있는 폭력사건들은 대부분 폐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면화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 잔재
한편, 이와 관련 한국의학교육학회 이성낙 회장은 “최근 유엔에서 한국의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초·중·고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체벌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온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교내 폭력이 초·중·고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학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 더욱이 학생의 신분도 아닌 전공의 과정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성낙 회장은 또 “전근대적이고 군사문화적인 사고방식처럼 상급자가 하급자,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의사들이 군대식으로 교육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용인되며 미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의학교육학회는 앞으로 의과대학을 비롯한 의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모든 곳에서 언어를 비롯한 신체적 폭력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캠페인 등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서정성 대표는 “교수와 레지던트의 관계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입장이라는 점, 내부적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 생명을 직접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이 아직까지 병원 내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며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병원에서도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신분을 떠나 상대방 입장을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앞으로 대전협 차원에서 이같은 전근대적인 병원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데 앞장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의 숨은 치부 중의 하나인 병원 내 폭력. 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근절하기 위한 의료계 차원의 노력이 시급하다.■
유지영 기자 molly97@
<주간 - 158> 2003-02-24
아랫년차 폭행한 전공의 구속 사건 발생
‘교육’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의료계의 수치
최근 인기 개그우먼 이경실씨가 남편인 손 모씨에게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폭력이 사회적 쟁점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경실씨가 이번 폭행으로 우측 늑골 6·7번과 골반이 골절되고, 남편 손씨가 이로 인해 긴급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일각에서는 가정폭력을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하지만 습관적인 아내 구타, 자녀의 부모학대, 아동학대 등 가정에서의 폭력문제가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폭력이 바로 의료계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그 어떠한 직종보다도 폭력에 대해 관대하지 않아야 할 병원에서,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철저함이 요구된다는 미명하에 ‘교육’의 이름으로 스승과 제자, 선·후배 의사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산 모 대학병원의 경우 3년차 레지던트가 1년차 레지던트를 둔기로 때려 피해자가 두개골골절 및 경막하혈종 등의 중상을 입고 응급수술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도 피해자인 1년차 레지던트의 경우 수술경과가 좋아 현재 병원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해자인 3년차 레지던트는 4개월 정직의 징계를 받고 병원을 떠나 있는 상태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3년차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1년차가 계속된 콜에도 연락이 없자, 새벽에 일을 마친 후 3년차가 1년차를 불러 야단을 치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옆에 있던 둔기로 1년차를 때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형사사건으로 3년차 레지던트가 구속되는 등 법적 절차가 진행되어 벌금형에 처해졌으며, 3년차 레지던트는 병협 차원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오는 2월말까지 수련기간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또한 해당병원으로부터는 지난해 11월 8일부터 2월 20일까지 정직처리 됐다.
이어지는 폭행 사건
또 지난해에는 경기도의 모 대학병원의 경우 정형외과의 김 모 교수가 지금까지 수년간 레지던트들에게 폭언과 폭력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해 오던 것이 문제가 돼 논란이 된 사건도 있었다.
수년간 각목이나 해머로 제자들의 두부 및 신체를 가격해 왔던 김 교수의 지속적 폭력은 이를 끝내 참지 못한 레지던트들이 병원을 집단 이탈하면서 밖으로 알려지게 됐는데, 결국 대한병원협회 등이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정원 책정시 전속전문의 수에서 김 교수를 제외토록 조치하자 김 교수가 병원을 끝내 사임하면서 일단락 됐다.
하지만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해당 대학병원 교수협의회가 최근 ‘대학다운 대학을 간절히 바라며’라는 성명서를 통해 ‘정형외과 폭행사건을 바라보는 일부 보직자들의 비뚤어진 시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교수협은 “이같은 폭력사태에 대해 ‘사랑의 매다’, ‘교육적 처벌이다’, ‘가르치려는 열정이 지나치다 보니 때리게 되었다’, ‘우리도 다 맞고 자랐다’는 등 지위를 이용한 강자의 일방적 폭력을 합리화하고 있다”며 “폭력은 그것이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국가에 의한 고문이든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될 수도, 두둔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교수협은 또 “레지던트들의 집단행동을 마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공모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일부 보직자들의 냉소적 시각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만성적 폭력 앞에 노출되면 정신적으로 무력해지고 자기방어가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만성적인 폭력 앞에서 레지던트들이 자기보호를 위해 어떠한 방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반문했다.
특히 “병원 차원에서 구타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이 있는지, 구타의 피해자가 되어 전문의가 되려는 꿈을 접고 병원을 떠나야 했던 제자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했느냐”며 “철저하게 무대책으로 일관”한 병원 측을 비난했다.
이에 따라 교수협은 이번 폭력사건을 계기로 병원 내 감춰져 있는 폭력의 실상을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 다시는 구타 등 폭력행위가 의료원 내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쉬쉬’하며 덮는 경우가 대부분
이처럼 병원 내에서 폭력이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지만 의료계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의료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무지나 불성실은 곧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가혹할 정도로 ‘철저함’이 요구되다보니, 이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폭력적 방법이 선택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른 형태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어차피 매일 얼굴을 보며 일해야 하는 점, 의사들끼리의 불협화음이 환자를 돌보는 데 있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는 폭력이 진료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모 대학병원의 일반외과 4년차 레지던트는 “1년차 때 일 처리를 빨리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로 맞거나 발에 채인 적이 있다”며 “일과 관련된 부분이라 맞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아랫년차가 워낙 우리 때와는 달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이런 병원 내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 내과 3년차 레지던트는 “우리 병원의 경우 전공의협의회가 없어 아직 폭력사태가 크게 불거진 적은 없다”는 말로 폭행 자체가 없지는 않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잘못된 관행, 이제는 고쳐야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든 폭력에 대해서는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폭력에 대해 가장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직업이 의사인데 ‘때리지 않으면 환자가 죽는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은 의료계가 다른 직종에 비해 오히려 낙후돼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아주의대 정신과 임기영 교수는 “사회적으로 폭력이 줄고 있는 것을 교육의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난 98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 시행된 이후 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줄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사회적으로 이제는 ‘때리면 패가 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교수는 “환자의 생명을 구실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로 얽혀있는 병원 내 보직자들의 위치 때문에 과거 의료계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다면 이제는 의료계도 사회의 변화에 맞춰 과거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들어 의과대학의 경우 인문, 사회 분야의 인성교육을 위해 교과과정을 바꾸고 있지만 의대에서 배웠다고 하더라도 의대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라며 “의사들의 지속된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의과대학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들에게도 윤리 등에 대한 교육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비록 실수에서 비롯된 폭력이라 하더라도 교수들이 감싸지 않고 이를 강력하게 제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구 모 대학병원 3년차 레지던트는 “3년전 인턴 수련시 노티파이에 30분 정도 늦었다는 이유로 1년 위 선배에게 인턴 동기가 환자 앞에서 뺨을 맞은 적이 있다”며 “그러나 이 사건으로 윗년차 레지던트가 징계를 당한 이후 폭력사건이 문제가 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레지던트는 “병원 내 폭력이 아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아직도 현실”이라며 “의국 별로 있는 폭력사건들은 대부분 폐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면화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 잔재
한편, 이와 관련 한국의학교육학회 이성낙 회장은 “최근 유엔에서 한국의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초·중·고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체벌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온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교내 폭력이 초·중·고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학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 더욱이 학생의 신분도 아닌 전공의 과정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성낙 회장은 또 “전근대적이고 군사문화적인 사고방식처럼 상급자가 하급자,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의사들이 군대식으로 교육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용인되며 미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의학교육학회는 앞으로 의과대학을 비롯한 의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모든 곳에서 언어를 비롯한 신체적 폭력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캠페인 등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서정성 대표는 “교수와 레지던트의 관계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입장이라는 점, 내부적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 생명을 직접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이 아직까지 병원 내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며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병원에서도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신분을 떠나 상대방 입장을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앞으로 대전협 차원에서 이같은 전근대적인 병원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데 앞장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의 숨은 치부 중의 하나인 병원 내 폭력. 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근절하기 위한 의료계 차원의 노력이 시급하다.■
유지영 기자 molly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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