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부족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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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부족 비상
10년후 심장수술도 못받을 판
일부 흉부외과 레지던트 6년간 1명 못뽑아
의료계 “필수 의료인력 대우 더 해줘야”
흉부외과 등 힘든 분야를 기피하는 의사들의 ‘이지 고잉(easy going) 현상’이 갈수록 심화돼 의료 인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레지던트 인기과 편향이 문제가 된 데 이어 지난 21일 마감된 전국 수련병원 인턴 접수에서는 의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인턴들마저 피부과·성형외과 등 인기과를 위해 대학을 ‘하향지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다간 10년 후엔 중국이나 필리핀 등 ‘수입 의사’에게 심장 수술을 내맡겨야 할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간(肝) 이식 분야 세계적 대가(大家)인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李承奎·54) 교수의 2002년 연봉은 세전(稅前) 1억3070만원. 세금 빼고 월 평균 850만원 정도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병원에 도착해 이틀에 한 번꼴로 15시간 이상 걸리는 간 이식 수술을 하는, 아주 ‘험한’ 육체노동자다. 휴일·명절도 없이 하루 24시간 ‘삐삐’에 매여 지내며, 병원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제 막 전문의를 딴 30대 초·중반 안과의사 월급은 세후(稅後) 1000만~1500만원으로 30년 경력 ‘명의(名醫)’보다 오히려 많다. 성형외과·피부과 전문의는 1000만원 안팎이다. 이들은 누구 눈치볼 필요 없이 느지막하게 출근했다 정시 퇴근하며, 주 1~2회 골프를 즐길 정도로 여유가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의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는 6년 동안 단 1명의 레지던트도 뽑지 못했다. 의사를 교육하는 ‘수련기능’은 오래 전에 중단됐고, 교수 2명이 레지던트도 없이 과 간판만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지방 대학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3년 전국 레지던트 선발 시험 결과, 흉부외과는 70명 정원에 39명을 뽑아 정원 확보율이 55.7%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는 정원 5명 중 2명, 고대병원은 정원 4명 중 3명이 미달됐다. 벌써 6~7년째 계속되는 현상이다.
응급실을 지키고, 암 환자를 치료하고, 병을 진단해내는 ‘필수 의료분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3년 레지던트 확보율은 일반외과 86.8%, 응급의학과 71.4%, 진단방사선과 71.4%, 치료방사선과 40.0%, 임상병리과 32.6%다. 반대로 개업이 가능한 피부과·성형외과·안과·비뇨기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 등엔 지원자가 넘쳐난다.
연세의대 치료방사선과 서창옥(徐昌玉) 교수는 “교수 자리를 보장하고, 레지던트 기간에 해외연수까지 시켜주겠다고 인턴들에게 치료방사선과 지원을 권유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과·외과 등 이른바 ‘메이저(major)’과 지원자들의 ‘자질하락’도 심각한 문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성적 상위자는 대부분 내과에 지원했으나, 올해엔 1~10등 중 내과 지원자가 1명도 없다. 대부분 안과·피부과·가정의학과 등 이른바 ‘마이너(minor)’과에 집중됐다. 서울대병원 교육연구부장 왕규창(王圭彰·신경외과) 교수는 “과거 똑똑하고 야심있는 의대생들이 외과 분야에 도전했으나 이젠 대부분 하위권에서 ‘등 떠밀려’ 외과를 지망한다”며 “근무강도가 세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데도 봉급은 ‘마이너과’와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네외과 없어 봉합수술도 큰병원갈판
의대 중견교수도 “힘들다” 개업 러시
報酬적고 사고위험만 높아 수술 기피
경기도 소재 H대학병원 외과 교수 3명은 공동개업을 위해 최근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40대 중·후반인 이들은 각자 전공을 살려 L교수는 대장·항문질환, C교수는 탈장 등 소아질환, W교수는 정맥류(靜脈瘤) 등 혈관질환을 주로 진료하는 개인 의원을 수도권에 차린다.
W교수는 “젊은 외과의사가 없어 야간 응급수술을 도맡아 했으나 이제는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외과학계의 주축인 이들의 공동개원 소식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외과·흉부외과 등 힘든 분야를 기피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외과의사들마저 외과 본연의 중증질환 진료를 뒤로 한 채 수술이 간편하고 수익성이 나은 개업의로 대거 나서고 있다.
국내 최초로 폐 이식을 성공시킨 김해균(金海均) 전 영동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지난해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정맥류 전문의원을 냈다. 김 원장은 “레지던트가 없어 큰 수술을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로 남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K대학병원에서 암수술을 하던 J모 교수도 최근 병원을 나와 정맥류 전문의원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외과의사들은 위암·심장질환 등 대형 수술에 대한 의료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을 꼽는다. 협심증 등을 고치는 관상동맥우회술의 경우 흉부외과 교수 2명·레지던트 2명·간호사 2명 등이 6시간을 달라붙는 데도 수술비는 60만~80만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외과의사들은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치질 등 대장·항문질환 분야에만 몰리고 있다. 현재 대장·항문학회 소속 외과의사는 전체 3400여명 중 1600여명에 이른다.
유방암 수술 전문 의사들도 이젠 유방성형수술을 표방하는 ‘성형외과’로 개업하고 있다. 성형외과를 표방한 외과의사 20여명은 최근 협의회도 발족했다.
한편 동네 외과의사의 약 절반은 병원 간판에 ‘외과’라는 말을 빼고 개업하고 있다. 감기 환자를 진료하는 데 ‘외과’란 표기가 손해기 때문이다. A대학병원 외과 교수를 그만두고 개업한 K모 원장은 “대부분의 외과 개업의사가 내과·가정의학과 진료를 하고 있다”며 “이제는 간단한 상처 봉합술도 대학병원에 가서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주수호(朱秀虎) 공보이사는 “힘들고 난이도가 높은 수술 분야의 의료수가를 대폭 현실화하는 등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외과의사 부족 사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金哲中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10년후 심장수술도 못받을 판
일부 흉부외과 레지던트 6년간 1명 못뽑아
의료계 “필수 의료인력 대우 더 해줘야”
흉부외과 등 힘든 분야를 기피하는 의사들의 ‘이지 고잉(easy going) 현상’이 갈수록 심화돼 의료 인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레지던트 인기과 편향이 문제가 된 데 이어 지난 21일 마감된 전국 수련병원 인턴 접수에서는 의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인턴들마저 피부과·성형외과 등 인기과를 위해 대학을 ‘하향지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다간 10년 후엔 중국이나 필리핀 등 ‘수입 의사’에게 심장 수술을 내맡겨야 할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간(肝) 이식 분야 세계적 대가(大家)인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李承奎·54) 교수의 2002년 연봉은 세전(稅前) 1억3070만원. 세금 빼고 월 평균 850만원 정도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병원에 도착해 이틀에 한 번꼴로 15시간 이상 걸리는 간 이식 수술을 하는, 아주 ‘험한’ 육체노동자다. 휴일·명절도 없이 하루 24시간 ‘삐삐’에 매여 지내며, 병원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제 막 전문의를 딴 30대 초·중반 안과의사 월급은 세후(稅後) 1000만~1500만원으로 30년 경력 ‘명의(名醫)’보다 오히려 많다. 성형외과·피부과 전문의는 1000만원 안팎이다. 이들은 누구 눈치볼 필요 없이 느지막하게 출근했다 정시 퇴근하며, 주 1~2회 골프를 즐길 정도로 여유가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의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는 6년 동안 단 1명의 레지던트도 뽑지 못했다. 의사를 교육하는 ‘수련기능’은 오래 전에 중단됐고, 교수 2명이 레지던트도 없이 과 간판만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지방 대학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3년 전국 레지던트 선발 시험 결과, 흉부외과는 70명 정원에 39명을 뽑아 정원 확보율이 55.7%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는 정원 5명 중 2명, 고대병원은 정원 4명 중 3명이 미달됐다. 벌써 6~7년째 계속되는 현상이다.
응급실을 지키고, 암 환자를 치료하고, 병을 진단해내는 ‘필수 의료분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3년 레지던트 확보율은 일반외과 86.8%, 응급의학과 71.4%, 진단방사선과 71.4%, 치료방사선과 40.0%, 임상병리과 32.6%다. 반대로 개업이 가능한 피부과·성형외과·안과·비뇨기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 등엔 지원자가 넘쳐난다.
연세의대 치료방사선과 서창옥(徐昌玉) 교수는 “교수 자리를 보장하고, 레지던트 기간에 해외연수까지 시켜주겠다고 인턴들에게 치료방사선과 지원을 권유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과·외과 등 이른바 ‘메이저(major)’과 지원자들의 ‘자질하락’도 심각한 문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성적 상위자는 대부분 내과에 지원했으나, 올해엔 1~10등 중 내과 지원자가 1명도 없다. 대부분 안과·피부과·가정의학과 등 이른바 ‘마이너(minor)’과에 집중됐다. 서울대병원 교육연구부장 왕규창(王圭彰·신경외과) 교수는 “과거 똑똑하고 야심있는 의대생들이 외과 분야에 도전했으나 이젠 대부분 하위권에서 ‘등 떠밀려’ 외과를 지망한다”며 “근무강도가 세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데도 봉급은 ‘마이너과’와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네외과 없어 봉합수술도 큰병원갈판
의대 중견교수도 “힘들다” 개업 러시
報酬적고 사고위험만 높아 수술 기피
경기도 소재 H대학병원 외과 교수 3명은 공동개업을 위해 최근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40대 중·후반인 이들은 각자 전공을 살려 L교수는 대장·항문질환, C교수는 탈장 등 소아질환, W교수는 정맥류(靜脈瘤) 등 혈관질환을 주로 진료하는 개인 의원을 수도권에 차린다.
W교수는 “젊은 외과의사가 없어 야간 응급수술을 도맡아 했으나 이제는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외과학계의 주축인 이들의 공동개원 소식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외과·흉부외과 등 힘든 분야를 기피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외과의사들마저 외과 본연의 중증질환 진료를 뒤로 한 채 수술이 간편하고 수익성이 나은 개업의로 대거 나서고 있다.
국내 최초로 폐 이식을 성공시킨 김해균(金海均) 전 영동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지난해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정맥류 전문의원을 냈다. 김 원장은 “레지던트가 없어 큰 수술을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로 남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K대학병원에서 암수술을 하던 J모 교수도 최근 병원을 나와 정맥류 전문의원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외과의사들은 위암·심장질환 등 대형 수술에 대한 의료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을 꼽는다. 협심증 등을 고치는 관상동맥우회술의 경우 흉부외과 교수 2명·레지던트 2명·간호사 2명 등이 6시간을 달라붙는 데도 수술비는 60만~80만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외과의사들은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치질 등 대장·항문질환 분야에만 몰리고 있다. 현재 대장·항문학회 소속 외과의사는 전체 3400여명 중 1600여명에 이른다.
유방암 수술 전문 의사들도 이젠 유방성형수술을 표방하는 ‘성형외과’로 개업하고 있다. 성형외과를 표방한 외과의사 20여명은 최근 협의회도 발족했다.
한편 동네 외과의사의 약 절반은 병원 간판에 ‘외과’라는 말을 빼고 개업하고 있다. 감기 환자를 진료하는 데 ‘외과’란 표기가 손해기 때문이다. A대학병원 외과 교수를 그만두고 개업한 K모 원장은 “대부분의 외과 개업의사가 내과·가정의학과 진료를 하고 있다”며 “이제는 간단한 상처 봉합술도 대학병원에 가서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주수호(朱秀虎) 공보이사는 “힘들고 난이도가 높은 수술 분야의 의료수가를 대폭 현실화하는 등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외과의사 부족 사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金哲中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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